수재 집안

2009. 11. 26. 17:31敎育

수재집안(1)

근래에 학벌 좋은 집안으로는 인동 장씨인 장재식(張在植·73) 집안을 들 수 있다. 장씨는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하였다. 3선 의원이고 김대중 정부에서 산자부 장관을 지냈다. 그의 부인인 최우숙(崔又淑·71)은 경기여고, 연세대 영문과를 나왔다. 이 정도 가지고는 수재라고 내세우기는 좀 그렇다. 이 집안의 두 아들은 물론이고 그의 조카들도 고려대 장하성 교수와 장하진 전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모두 대단한 인물들이다. 무엇이 이 집안을 수재 집안으로 만들었는지, 그 교육방법과 가풍 등을 한 두 차례 소개하겠다.

먼저 장재식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이 물건이다. 큰아들은 장하준(張夏準·45)이고, 작은 아들은 장하석(張夏碩·41)이다. 장하준은 현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이고, 장하석은 런던대학 과학철학 교수로 있다. 부친인 장재식의 말에 의하면 케임브리지 대학 경제학 교수가 65명이라고 하는데, 아시아인 교수는 장하준이 유일하다고 한다. '월간조선'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그가 케임브리지 교수가 된 것은 영국에서 공부한 지 4년 만인 27세였다고 한다. 얼마나 공부를 잘했기에 영국으로 건너간 지 4년 만에, 그리고 30세도 안 된 나이에 케임브리지 교수가 된단 말인가.

장하준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86년에 케임브리지 석사과정에 지원하였으나 대학 측에서 곧바로 석사과정에 받아 주질 않았다. 그 대신 디플로마(diploma) 과정은 허용한다는 입장이었다. 디플로마는 학위를 주지 않고 수료증만 주는 과정을 말한다. 수모를 참고 디플로마에 들어가서 4개월 만에 실력을 인정받았다. 4개월 동안 장하준을 겪어 본 학과 교수들이 "너에게는 1년 만에 석사를 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사과정도 마찬가지였다. 박사과정이 끝나기 전에 이미 교수들이 "너는 경제학과 교수 하라"고 했다. 교수 임명되고 나서 박사를 받았다.

하지만 대학원 수업과정이 아주 강행군이었다. 사실상의 1대1 수업으로 진행됐는데, 1주일에 10시간 수업이라고 하면 3시간은 강의시간이지만, 나머지 7시간은 자기(학생)가 써 온 논문1편을 발표하는 시간이었다. 1주일에 논문 1편을 써야 하는 과정이었다. 7시간 동안 과목담당 교수와 대학원생이 그 논문의 내용 하나하나에 대해서 토론이 진행되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진검승부'를 거친 셈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20/2008062001454.html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입력 : 2008.06.20 22:16

수재집안(2)

수재는 공부를 어떤 방식으로 하는가? 장하준(케임브리지대), 장하석(런던대) 형제가 유년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 공부 방법은 독서였다. 엄청난 독서를 하였다. 부친의 증언에 의하면 장하준은 홍익초등학교 4학년 때 1시간에 250페이지를 읽어 제쳤다고 한다. 초등학생이 같은 구내에 있는 홍익대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다가 보았다. 역사, 위인전, 동화책, 과학 등등 여러 분야의 책을 갖다 놓고 보았다. 250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는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지는 '이놈이 혹시 거짓말을 하는가?' 싶어 그 책을 펼쳐놓고 내용을 테스트해보면 거의 정확하게 대답하곤 하였다. 어린 하준이가 책을 많이 빌려가니까, 홍익대 도서관 직원은 아마도 아버지가 그 책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중학교 2학년 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를 영어원서로 11독하고, 번역판으로 다시 12독을 하였다. 저자인 칼 세이건으로부터 직접 편지까지 받았다. 장하석 교수는 형보다 한술 더 뜬다. 장하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영한사전'은 심심하다고 밀쳐놓고 '영영사전'만 보았다. 거의 외울 정도이다 보니 중3때 본 토플점수가 630점이 나왔다. 히어링은 안 되는 상태에서 이 점수가 나왔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미국 10대 고교에 들어가는 '마운트 허먼'(North field mount hermon) 고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1학년 마치고 월반해서 2년 만에 고교를 수석 졸업하였다. 마운트 허먼의 106년 역사에서 동양인 수석은 처음이었다.

대학은 칼텍(캘리포니아 이공대학)을 들어갔다. 칼텍은 1년에 200명 모집인데, 합격자 중에 107명이 미국 전역의 고교 수석졸업자들이었다. 서로가 서로를 보고 놀라는 분위기였다. 장하석은 칼텍에 다니면서 매주 1권씩 철학이나 심리학 분야의 두툼한 전문서적을 독파하였다. 이공계 다니면서 인문학 서적들을 섭렵한 것이다. 대학 졸업할 때까지 모두 107권을 끝냈다. 과학의 밑바탕에는 철학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형제들의 지칠 줄 모르는 독서능력과 지적호기심은 어디서 왔단 말인가? 내가 보기에 70%는 타고난 유전이고 20%는 노력이다. 나머지 10%는 명당에 조상묘를 써서 '묘바람'(?)도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23/2008062301547.html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입력 : 2008.06.23 22:16 / 수정 : 2008.06.23 23:01

수재 집안(3)

딸은 아버지 쪽의 기질을 많이 닮고, 아들은 어머니 쪽의 기질을 많이 물려받는 경향이 있다. 경향성에 있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래서 사대부 집안에서는 며느리의 품성과 아이큐를 특히 중시하였다. '씨만 좋다고 되는 일이 아니고, 밭이 더 좋아야 한다.'는 이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밭이 좋지 않으면 자식농사 망칠 수가 있다. 장하준, 장하석 형제의 어머니 최우숙은 고교 영어교사를 하였는데, 기본과 원칙을 강조하는 기질이었다.

"어머니가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함께 숙제를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 사이에 친구가 대신 어머니 숙제를 해주었다. 잠에서 깬 어머니가 '내 숙제를 왜 네가 했냐?'면서 친구가 해준 숙제를 지우개로 다 지우고 본인이 처음부터 다시 하였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두 아들은 듣고 컸다. 어머니의 이러한 기질이 두 아들의 공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 아버지인 장재식 쪽에서 자식들에게 강조한 가풍은 '덕을 쌓고,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라'였다.

자기 혼자만 잘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사회에 기여를 해야지 인생에 태어난 보람이 있다는 게 장씨 집안의 가풍이었다. 6·25가 발발하였을 때 장재식의 4형제는 모두 전쟁터에 나가야만 하였다. 4형제가 모두 6·25참전용사이다. 당시 장재식은 광주서중 4학년의 16세 어린 나이였지만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서 싸워야 한다.'는 엄명을 내렸기 때문에 낙동강전투에 참여하였다. 장재식의 둘째형인 장충식(張忠植·79)은 당시 서울대 공대 재학 중이었는데, 압록강전투에서 중공군의 기관총을 맞아 어깨 관통상을 입었다.

셋째형인 장영식(張榮植·서울대공대 졸·뉴욕대 교수)도 광주에서 총을 맞았다. 상이용사 장충식의 자식들이 바로 장하진(전 여성가족부 장관), 장하성(고려대 교수) 그리고 고려대를 나와 옥스퍼드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은 장하원(하나금융경영연구소 대표)이다. 장하성은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운동을 하였다. 삼성그룹을 압박했던 '소액주주'운동으로 한국의 지식사회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현재는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장하성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장하성의 '소액주주'운동 밑바탕에는 이 집안의 사회봉사 가풍이 깔려 있는 셈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6/25/2008062501607.html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입력 : 2008.06.25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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