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9. 12:35ㆍ受持
'도박' 실패한 줄리아니 중도탈락 위기, 허커비 바람도 급속 약화, 경선 완주 불투명
작년말까지 미국 대선 공화당 후보 지지율 1위를 달렸던 루돌프 줄리아니 (Rudolph William Louis Giuliani III, 1944년 5월 28일) 전 뉴욕시장이 플로리다 경선에서 마저 ’0위’로 처지며 탈락위기에 몰렸다. 역사에 없는 도박 같은 선거 전략을 고집했던 줄리아니의 어이없는 몰락은 미국 선거사에 길이 남을 연구사례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 대선의 풍향계로 불리는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서 승리해 돌풍을 일으켰던 마이크 허커비(Michael Dale Mike Huckabee, 1955년 8월 24일) 전 아칸소 주지사도 저조한 지지율로 4위에 그쳐 경선 레이스를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허커비는 아이오와 승리 후 뉴햄프셔에서 3위에 그친데 이어 미시간과 네바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플로리다에서까지 모조리 하위권으로 처짐으로써 ’허커붐’은 ’찻잔 속의 태풍’이었음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허커비의 약세가 드러나자 그를 지지했던 기독교 보수층 등이 롬니(Mitt Romney, 1948년)와 매케인(John Sidney Mc CainIII, 1936년 8월 29일) 등 다른 후보들로 분산되는데다 선거모금도 힘들어져 그가 향후 경선을 완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것으로 지적된다.
줄리아니는 투표 당일인 29일까지도 “여론 조사는 틀렸다. 나는 플로리다에서 이길 것이다”라고 단언했지만 이제 참담한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플로리다 패배로 이제 ’슈퍼 화요일’에 걸 기대도 사라진 만큼 그의 경선 탈락은 시간문제나 다름없는 일이 됐다. 그 자신도 ’30일 아침에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해 중도 포기를 시사했다.
9.11테러 뒷수습을 지휘한 뉴욕시장에서 단숨에 전국적 영웅으로 부상한 줄리아니는 지난달 초까지만 해도 공화당 후보 전국 지지율 1위 반열에 올랐었다. 그 전까지 상당 기간 그는 거의 부동의 선두였다.
그러나 줄리아니는 미국 대선 레이스의 막을 올리는 1월 3일 아이오와주 경선에서 6위에 그친 것을 시작으로 닷새 뒤인 8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 15일 미시간 경선, 19일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에서 모조리 꼴찌 수준으로 처졌다.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미국 대선의 풍향계로 평가받는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 이기기 위해 한겨울 눈밭을 누비고 있을 때 줄리아니는 줄곧 플로리다에 머물렀다.
줄리아니가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 참패를 무릅쓰고 플로리다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한정된 자원과 조직을 모든 지역에 분산 투입하기 보다는 대의원 수가 많이 걸린 지역에 집중해 확실히 승리를 따내는겠다는 것이었다.
57명의 대의원이 걸린 플로리다에서 승리한 뒤 여세를 몰아 2월 5일 ’슈퍼 화요일’에 캘리포니아,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등에서 이기면 대세는 줄리아니 쪽으로 기운다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대의원 수가 적은데다 매케인이나 롬니에게 열세여서 승산도 낮은 아이오와나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매달리기 보다는 플로리다에 집중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줄리아니의 이런 선거 전략은 결국 참담한 실패로 드러나고 말았다.
역사와 경험을 무시한 독선적 선거전략이 줄리아니의 몰락을 불러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아이오와나 뉴햄프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이기지 못하면 공화당 후보, 나아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역사적 사실을 무시한 게 실패를 자초한 이유라는 얘기다.
줄리아니는 10월 초까지만 해도 아이오와 여론조사에서 2위였다. 뉴햄프셔에서는 12월 초까지 2위였고 미시간에서는 12월 중순까지 1위,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도 12월 중반까지 선두권이었다. 하지만 그가 일찌감치 이들 지역을 포기하고 플로리다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전세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매케인과 롬니, 허커비가 뉴햄프셔, 미시간, 아이오와에서 승리해 언론의 조명을 받으며 바람을 일으키는 사이 줄리아니는 줄곧 관심권 밖에 머물러야 했다. 나아가 초반 경선지역들에서 모조리 하위권을 기록하는 사이 플로리다에서마저 그는 꼴찌권으로 밀려났다.
그가 매케인이나 롬니, 허커비처럼 현실적 승산보다는 역사와 경험을 존중해 초반 경선지역들에서 정면 승부를 걸었더라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줄리아니는 패배가 결정되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전략은 최선의 선택이었고, 실수라고 생각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줄리아니는 이제 독선에 사로잡혀 성공할 수 있었던 선거전을 참패로 이끈 도박 같은 선거전략의 주인공으로 미국 선거사에 남을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연합뉴스 입력 : 2008.01.30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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