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의 기술

2009. 11. 19. 11:32受持

 

▲ AP

FTA 통해 본 ‘고수들의 6가지 전략’, 줄듯 말듯…, 밀고 당기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마지막 담판이 시작됐다. ‘테이블 위의 전쟁’으로 표현되는 협상 최전방에 나선 양측 협상가들은 어떤 전략과 전술로 상대방을 설득시킬까.

막판 협상이 이뤄지는 요즘이야말로 ‘프로 협상가’들의 노하우가 빛을 발할 때다. 도박판의 ‘타짜’만큼이나 상대의 수(手)를 읽기 위해 고민하는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우리 협상팀 관계자와 협상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한·미 FTA에 숨은 최고의 협상 기술들을 찾아봤다.

① 스트레스를 줘라

지난해 9월 한·미 FTA 3차 협상은 미국 시애틀에 있는, 수년간 거의 사용되지 않은 허름한 박물관에서 열렸다. 서울에서 열린 2차 협상 때 우리가 특급 호텔에 ‘모신’ 것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한 협상 참가자는 “보안을 위해 외딴 곳으로 잡았다고 하지만 무시당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의 ‘스트레스전략’일 수 있다. 상대편을 자극해 협상에 집중할 수 없도록 만들어 정작 중요한 사안은 넘어가게 만드는 것이다.

1990년대 중반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7월 무더위에 베트남 정부와 통상 협상을 벌이던 한국 대표단은 에어컨도 없는 호찌민 시청에서 땀을 뻘뻘 흘렸다. 당시 협상에 참여한 안세영 서강대(국제대학원·협상전문가) 교수는 “사실 시청엔 에어컨시설이 잘돼 있었다.”며 “스트레스전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② 최종 결정권자는 한 걸음 물러서라

회사 간의 인수·합병을 추진하는데 사장이 “반드시 성사시키라”고 지시하는 것은 좋지 않다. ‘협상 성공’이 제일 목표가 되면서 ‘협상의 내용’은 뒤로 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협상 초기 “한·미 FTA는 꼭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한 것은 협상전략으로 보면 좋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최근 “이익이 안 되면 체결 안 해도 된다. 시한에 얽매이지 말라”고 한 말은 협상단에 힘을 실어줬다는 평가다. 실무진이 ‘오버’하는 것을 막고 상대를 압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③ 초조하게 만들라

2차 세계대전 말기 한반도에 38선을 그은 얄타회담에서 소련의 스탈린은 늙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을 피로하게 만들기 위해 밤늦게까지 협상을 해 많은 것을 얻어냈다.

이번 FTA 협상에선 누가 더 초조할까. 얼핏 생각하면 경제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일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우리 측 협상단 고위 관계자는 “미국이 태국, 말레이시아와의 FTA 협상을 연달아 실패해 남은 것은 한국밖에 없다”며 “이것마저 실패하면 부시 행정부의 아시아전략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도 초조할 수 있다.

④ 악역(惡役)과 선역(善役)의 등장

영화를 보면 한 경찰관이 피의자를 거칠게 다루면서 마실 물도 주지 않다가 다른 경찰관이 들어와서 담배를 건네면서 회유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지금 합의를 봐라. 안 그러면 더 힘들 것이다”란 뜻이다.

이번 한·미 FTA 협상도 8차까지‘미국이 양보한 것이 거의 없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최종 담판에 나선 카란 바티아(Bhatia) 미무역대표부(USTR) 부대표가 담배를 들고 오는 경찰관 역을 맡을 수도 있다. 이것이 전통적인 미국의 협상방식이다. 그러나 그가 건네는‘담배’가 어느 정도 가치가 있나 잘 따져야 한다. 결국 진짜 협상은 이제부터다.

⑤ 협상은 정보전이다

협상 상대가 부인과 별거 중이라면 모른 척하며 끊임없이 부부관계에 대한 농담을 할 수도 있다. 신경을 날카롭게 해 협상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다. 실제로 과거 미국과 한국 기업 사이의 인수·합병 협상에서 우리 기업이 썼던 방식이다. 이처럼 사생활도 중요한 협상에는 치명적인 정보가 된다.

⑥ 적진을 분열시켜라

협상 상대방 중에 합의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를 제거하는 방법은 바로 여러 사람 앞에서 그를 칭찬하는 것 이다. 그러면 상대측이 동료를‘배신자’로 의심하고 단합이 깨지는 효과가 있다. 안세영 교수는“집단의식이 강한 한국이나 일본이 의외로 이런 전략에 취약하다”며“유치하지만 미국이 이 같은 분열전략을 쓸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의준 기자 joyjune@chosun.com 입력 : 2007.03.26 22:59 / 수정 : 2007.03.26 22:59

한·미 협상 영웅들, 제네바가 그들을 `FTA 전사`로 키웠다

미국은 세계 최강 외교 대국다운 노련한 협상술을 구사했다. 그러나 한국 협상단도 밀리지 않았다.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 협상단은 이들을 가리켜 "전사(戰士)"라고 불렀다. 그 배경에는 저 멀리 스위스 제네바에서 자신을 단련한 이른바 '제네바 사단'이 버티고 있다. 1959년 개설된 '주 제네바 대표부'는 한국 통상 인맥의 메카다. 그곳에서 꾸준히 실력을 쌓아온 통상 전사들이 이번 협상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에서 협상술의 장단점을 익힌 '지미(知美)파'들이 가세해 협상 전력을 보강했다.

◆ 제네바 사단

외교통상부는 전통적으로 '미국통(대미 관계를 전문적으로 다룬 외교관)'이나'재팬 스쿨(대일 외교 전문가)' 출신들이 주름잡았다. 통상 분야 외교관은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였다. 그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계기로 제네바 사단이 새롭게 부각하고 있다. 협상 대표인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 김종훈 수석대표부터 제네바에서 뼈가 굵은 인물이다. 청와대에서 전체 협상을 조율한 윤대희 청와대 경제수석도 제네바 경제참사관을 거친 통상 전문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이들 외에 음지에서 묵묵히 일한 제네바 사단은 더 많다. 협상 후방 지원 업무를 맡은 조태열 통상교섭조정관(차관보급)은 주 제네바 차석대사를 지냈다. 청록파 조지훈 시인의 막내아들인 그는 2000년 미국과 인천공항 건설공사가 정부에서 발주하는 공사에 해당하는지를 가리는 세계무역기구(WTO) 분쟁에서 승리를 거둬 한국 통상사를 새로 썼다.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WTO에 직접 제소한 사례 중 첫 패배여서 당시 미국이 충격을 받았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건태 지적재산권, 박석범 노동, 환경 협상 분과장도 정통 제네바 인맥에 속한다. 두 달 전 각각 제네바 차석대사와 방글라데시 대사로 발령받은 이들은 현지 부임까지 미뤄가며 한·미 FTA를 타결시켰다. 두 사람은 한국이 수세에 몰렸던 지재권과 노동, 환경 분과에서 후방 수비수로 활약했다.

농업 협상 대표로 "FTA 협상이 깨질 수도 있다"고 상대방을 윽박지른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 막판까지 쌀시장과 쇠고기 검역 문제를 방어한 그도 제네바 대표부에서 1등 서기관을 지낸 경험이 있다. 이 밖에 최경림, 남영숙 분과장도 제네바 사단의 일원이다.

◆ 왜 제네바인가

 

스위스 대사관(베른 소재)과 별도로 제네바에 대표부가 있다. WTO.세계보건기구(WHO).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해 40여 개의 크고 작은 국제기구 본부가 제네바에 모여 있기 때문이다. 초대 김용식 공사를 시작으로 이상옥, 노신영, 박동진 장관 등 거물급 외교관들이 제네바 대표부 대사를 거쳤다. 최근 제네바 대표부 위상은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한국의 국제 파워가 커지면서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잦아지고 발언권이 커졌기 때문이다.

94년 우루과이라운드(UR)를 계기로 외교부는 젊은 간부들을 제네바 대표부로 내보내기 시작했다. 실력 있는 차세대 외교관들을 본격적인 통상 협상가로 양성하기 위한 포석이었다. 이때부터 통상 분야 외길을 걸어온 '제네바 사단'이 태동했다.

2002년 한국의 첫 FTA인 한·칠레 FTA 때부터 협상 전면에 나선 제네바 사단은 이번 한·미 FTA까지 협상을 주도했다.

제네바 인맥의 특징은 세련된 화술과 노련한 협상술이다. 각종 국제통상 규범에 익숙한 것도 강점이다. 그러나 제네바 사단에 98년은 악몽의 한 해였다. 당시 유럽연합(EU)과 한국 주세(酒稅) 인하를 둘러싼 WTO 분쟁에 패배하면서 소주세율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제네바 사단의 한 인사는 "이 뼈아픈 경험을 와신상담하며 줄곧 칼을 갈았다"고 회고했다.

◆ 워싱턴 지미(知美)파

주미 대사관과 외교부 북미통상과를 거친 통상 전문가들이다. 상대적으로 젊은 2세대 협상가가 많다. 이번 협상의 실무 라인을 이끈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 김원경 과장, 안세령 서기관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대표급 회담에 배석해 미국 측을 끊임없이 견제한 숨은 주역이다. 미국 변호사 출신이기도 한 김 과장과 안 서기관은 미국 측에서 "다루기 어려운(tough)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두 사람은 난해한 협정문 확정 작업에서 끈질기게 맞서 미국의 노련한 변호사들도 고개를 흔들었다.

'지미(知美)파'들도 아픈 기억이 많다. 80~90년대 미국과 자동차, 쇠고기 분쟁을 겪으며 판판이 당했다. 당시 쓰라린 경험을 교훈 삼아 이번 협상에선 절묘한 타협과 절충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비스 투자 분과장을 맡은 김영모 재경부 통상조정과장은 '제네바 사단'과 '지미(知美)파'에 한발씩 걸친 인물이다. 옛 경제기획원 대외경제조정실에서 근무하면서 80년대 수퍼 301조를 놓고 벌어진 한·미 협상과 UR 서비스협상을 모두 경험했다. 스위스 제네바 대표부에도 4년간 근무했고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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