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산업

2009. 12. 18. 10:04經濟

[심층분석] 일제 이후 100년간 '규제 범벅' 술 산업

생막걸리에 과일 섞으면 酒稅 6배로 뛰어

면허·원료·병마개까지 규제 술병에도 술처럼 세금 매겨

시설 규제로 맥주회사 2곳뿐 막걸리 부활은 규제완화 덕

전남 영암에 있는 막걸리 제조업체 삼호주조장의 이부송(72)씨. 지난 2006년 영암 특산물인 무화과를 넣은 생(生)막걸리를 개발했다. 하지만 개발만 해놓고 생산을 못하고 있다. 생막걸리가 아닌 살균된 막걸리에만 과일을 첨가할 수 있다는 규제 때문이다. 생막걸리에 과일을 넣으면 과일주로 분류돼 세금이 5%에서 30%로 높아진다. 주조장에서 함께 일하는 아들 이현진(30)씨는 "무화과 생막걸리를 개발해놓고도 세금 때문에 시중에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1909년 일제가 주세법(酒稅法)을 만들어 술을 규제하기 시작한 지 100년이 흘렀다. 전문가들은 100년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의 술 산업은 '규제 범벅'이라고 비판한다. 제조면허·원료·생산·유통까지 온통 규제 덩어리다. 병마개와 술병도 규제 대상이다. 일본의 사케와 외국의 위스키, 와인이 세계적인 술로 성장하는 사이 우리나라 술은 '규제'에 얽매여 경쟁력이 약해져만 갔다. 술 적자액이 4억3415만 달러(2008년)에 달한다. 10년 전에 비해 적자 규모가 4.6배 커졌다. '맛없는 술'에 취해야 하는 소비자들도 규제의 피해자다.

◆ 소주 원료는 모두 같아

현재 전국 10개 소주회사에서 만드는 소주는 한 형제다. 소주 원료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정(酒精·에탄올)의 원료를 정부가 정해 주고, 그 주정의 판매를 대한주정판매라는 한 회사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세청 관계자는 "주정은 마약이나 총포처럼 국가의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대한주정판매 사장은 대개 국세청 퇴직 관료들이 맡는다.

우리나라 맥주업체는 2곳뿐이다. 50년 넘게 전국의 영업지역을 나눠 가지며 시장을 지배해왔다. 두 회사가 만드는 맥주 종류도 12개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맥주 맛도 다른 나라 맥주보다 형편없다고 소비자들은 불만이다. '유럽 맥주 견문록'을 쓴 이기중 전남대 교수(인류학)는 "술 문화의 핵심은 다양성인데, 우리 맥주는 천편일률적"이라고 했다. 국내 소비자들이 비싼 가격을 지불하면서도 외국맥주를 찾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맥주 수입액은 3937만달러. 10년 전인 1998년 수입액(84만 달러)의 47배다.

◆ 시설도 규제, 병마개도 규제

맥주 회사가 2개밖에 없는 이유도 규제 때문이다. 1850kL 이상의 발효시설을 갖춰야 하는데, 이는 500mL 맥주를 하루에 1만병 정도 생산할 수 있어야 맥주 업계에 뛰어들 수 있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1975년(이젠백맥주), 1994년(카스맥주) 때 3파전을 제외하면 맥주 시장은 항상 2파전이었다. 일본의 경우 지난 2004년 맥주 설비 기준을 2000kL에서 60kL로 확 줄여 270여개 중소회사가 맥주를 만들고 있다. 시설규제가 너무 강하다는 비판이 일자 지난 9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기준을 대폭 낮춰 신규진입의 숨통을 터주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법 개정권을 가지고 있는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완화 방침만 있을 뿐 어느 정도로 기준을 완화할지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소주·맥주의 병마개도 국세청이 지정한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 2곳에서 전량 납품받아야 한다. 1985년부터 시작된 독과점이다. 병마개 숫자를 세 세금을 매겨야 한다는 이유로 생긴 규제다. 하지만 캔맥주와 팩소주는 병마개가 없어도 기계로 출고숫자를 세 세금을 매긴다. 병마개 규제는 없어도 무방하다는 얘기다. 한 국책연구소 연구원은 "세왕금속의 사장이 지방국세청장 출신일 정도로 병마개 회사에 대한 국세청의 입김이 강하다"고 말했다.

술병도 알게 모르게 규제를 받는다.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는 술병 안의 내용물에만 세금을 매긴다. 하지만 우리는 술병에까지 술과 같은 세금을 매긴다. 예쁜 병에 막걸리를 담으려고 시도하면 병에도 여지없이 세금을 매기는 구조다.

일본의 인터넷 쇼핑몰에선 한국 막걸리를 살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쇼핑몰에선 막걸리를 살 수 없다. 우리나라에선 막걸리의 인터넷 판매가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8월 전통주 육성책을 발표하며 올해 말 인터넷 판매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이 또한 내년 하반기쯤으로 미뤄졌다. 주세법 개정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에서다. 법이 개정돼도, 전통주 제조업체의 홈페이지와 농수산물유통공사에서 마련한 별도의 홈페이지에서만 주문할 수 있을 전망이다.

◆ 최근 막걸리 부활은 규제완화의 힘

정호열 공정거래위원장은 "막걸리의 인기 이유를 따져보면 결국 규제완화 덕분"이라고 말한다. 1977년까지 쌀로 막걸리를 못 만들게 했고, 1998년까지 막걸리에 식물을 첨가할 수 없었으며, 2000년까지는 양조장이 있는 시·군 지역 밖으론 막걸리 반출을 금지했던 규제들이 차근차근 풀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막걸리 출고량은 17만6398kL로 2003년(13만8162kL)에 비해 28% 늘었다. 1990년대 중반에야 시작된 막걸리 수출은 조금씩 늘어 2003년엔 1676kL를 기록하더니, 2008년에는 5457kL로 5년 만에 3.3배로 늘었다. 이동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직도 막걸리에는 풀려야 할 규제가 적지 않다"면서 "그러나 막걸리의 부활은 세금을 쉽게 많이 걷기 위해 만든 규제가 얼마나 술 산업을 억눌러 왔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2/17/2009121701602.html?Dep0=chosunmain&Dep1=news&Dep2=headline1&Dep3=h1_02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입력 : 2009.12.18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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